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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전교 1등’들에게 우리가 반격할 차례다
    건강세상 소식지/건강세상 9.10월호 2020. 10. 13. 11:46

    ▲ 국민권익위원회가 1일 발표한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점 설문조사 결과(사진=국민권익위원회).  © 팝콘뉴스

    98, 그들이 돌아왔다.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를 반대하며 진료 현장을 떠났던 의사들이 18일 만에 복귀했다. ‘의사 파업’, ‘집단행동’, ‘불법 진료 거부등으로 불렸던 그들의 행동은 엄밀히 말하면 파업은 아니고 집단 휴진이다. 의사협회나 대한전공의협회는 노동조합이 아니고 직능단체라 파업권이 없기 때문이다. 집단행동은 중단했지만 앞으로 의정 협의 진행에 따라 그들은 언제든지 집단행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전교 1을 걸어 왔던 그들에게 무서운 것이나 걸림돌은 없었고, 이번에도 역시나 승리했다. ‘아픈 국민에게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은 백전백승을 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 업무 부서조차 버리고 떠났지만 엄중 처벌, 강경 대처는 의사들을 비켜 갔다. 2000년 의약분업을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했던 의사들이 의사가 늘어 과잉 진료가 우려된다고 주장하자 정부는 3253명이던 의대 정원을 3058명으로 줄였다. OECD 평균 천 명당 의사 수 3.5명에 비해 한국은 2.4명밖에 되지 않아 시민사회단체와 국민들은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했지만 의대 정원은 20년 그대로다.

     

    오랜 대기 끝에 예약한 진료가 취소되고 수술과 시술이 늦어지거나 취소되는 등 의료 대란이 일어났지만 병원은 그래도 굴러갔다. 의사들이 떠난 자리를 간호사들이 대신했고 그 과정 중에 불법 진료 업무까지 떠맡기도 했다의사들의 집단 휴진 사태로 각 병원은 코로나19가 확산되던 3, 4월보다 입원 병실 가동률이 떨어졌고 외래진료와 검사 건수 등도 급격히 떨어졌다. 입원 환자 수가 줄어들고 수술 취소로 인해 대다수의 수술방이 폐쇄되자 병원은 돈이 없다며 간호사들에게 원치 않는 응급 오프(off)나 연차를 강요했다. 심지어는 내년 연차까지 미리 끌어다 쓰라는 지침을 내리는 병원도 있었다. 강제 오프를 거부하면 병원의 복무규정을 읽게 하면서 코로나병동으로 보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는 전공의가 부족한 대학병원 외과, 흉부외과 등에서 진료 보조 인력으로 처방 대행부터 수술 보조, 진단서 작성, 시술까지 수행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상 위법임에도 값싼 인력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PA 간호사들은 법률적인 보호도 받을 수 없다. PA 간호사들은 법제화를 요청하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은 간호사 업무의 확대를 경계하며 PA 제도화에 부정적이다. 그런데 전공의 업무 공백이 일어나자 교수들은 PA 간호사에게 교수의 사번(ID)과 비밀번호를 알려 주며 오더(처방)를 내라고 지시했다. 항암 환자들의 케모포트 바늘 교환이나 드레싱, 남자 환자 요도관 삽관과 관장, 동의서 받기 등이 간호사 업무로 넘어왔다. 인턴, 전공의 부재로 1주마다 교환하던 기관절개관이 2주로 늦어지고, 수술 환자의 조기 퇴원, 드레싱이나 진통제 처방 등이 지연되면서 환자들은 모든 불만을 간호사에게 퍼붓기도 했다. 응급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이 보도되자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내가 일하는 병원과 병동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긴장의 연속, 감정노동은 간호사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직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201912월에 한 매체의 기고문을 통해 의대 정원 확대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827정부의 정책 즉각 중단, 원점 재논의’, ‘집단행동한 학생·인턴·전공의 처벌을 끝까지 반대하겠다고 전 직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의사들의 불법적인 진료 거부를 대놓고 지지한 것이다. 코로나19 재확산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공공병원 확대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노동조합은 국가중앙병원장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며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김연수 병원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헌법에도 보장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파업)에는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며 임금 삭감과 고소 고발을 남발하는 병원들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징계하고 나서지 않는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교수들은 성명서를 내며 적극적으로 엄호 지지했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병원 자본은 도대체 어떤 이익이 생기기에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것일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못 세운다고 선언하며 무노조 경영을 내세웠던 삼성인데, 대한전공의협회장이 삼성의료원 출신이라는 것은 너무나 낯설고 의아스럽다. 단체교섭에서 병원은 코로나와 의사 파업으로 인해 적자 경영이라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설레발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강조하고 있다.

     

    해고부터 복직하기까지 10년 동안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300일 넘게 고공농성을 하거나 죽음을 각오하며 곡기를 끊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던 정부가 이번에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섰다. 씁쓸하고 자괴감마저 든다.

     

    독일은 의대 입학 정원의 50퍼센트 확대를 발표했다. 매년 의대 졸업생의 10퍼센트는 지방에서 일하도록 하는 농촌 지역 의사 할당제도 주마다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대응 과정에서 의료 인력 부족, 특히 지방의 의료 인력 부족 및 의료진의 장시간 노동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에 대해 공감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공공의 이익이 아닌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집단이기주의에 굴복했다. 정부는 의협과 의대 정원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했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 개편 등에 대해서도 협의할 예정이다. 의정협의가 몰고 올 파장이 매우 우려스럽다.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은 정부의 공공병원 확대 없는 의대 정원 확대는 사립 의대와 지역 민간병원 정원만 늘리는 결과여서 반대했다. 의료 취약 지역에 의료 인력을 보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며 코로나19 확산 대비를 위해 공공감염병원 등 공공병원 확대를 요구했다.

     

    의료보험이 만들어졌을 때, 의약분업 때, 그리고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의사들은 강고하게 반대했다. 의료 개혁은 의사들의 집단적인 저항을 극복하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지난 역사는 말하고 있다수도권 확진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병원은 환자 분류 지침 및 간호 인력 배치 기준, 국가지정격리병상 및 코로나 전담 병동, 생활치료센터 입소 기준 등 구체적인 지침과 설명서도 없다. 2차 팬데믹이 온다고 예상을 하지만 대응 준비는 여전히 부족하다. 보건의료인이 파업해야 한다면 공공병원과 인력을 확충하여 국민 건강권을 지키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투쟁이어야 한다.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고 의료는 공공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전교 1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반격할 차례다. 국민의 힘으로 철옹성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의사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서울대병원 간호사 이향춘 (작은책 10월호 기고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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