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 4강 국내외 상병수당제도는 어떤 모습일까?

현재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등 그동안 제도가 많이 발전해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간 이루어져 온 상병수당에 관한 논의는 WHO의 보편적 건강보장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이번 강의에서는 상병수당을 보편적인 사회 보호를 위한 제도로 보는 관점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전환과 ‘사회건강보호’라는 새로운 개념‧원칙으로의 재편에 관한 논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앞으로 상병수당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며 이를 위한 어떤 실천의 길이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관점을 제시해줄 것이다.

 

1. 노동시장구조 이중화와 사회보장제도의 역진적 선별성 (김진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상병수당은 여러 사회보장제도의 일부이다. 이 발표는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점과, 권리로서 상병수당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필요한 사회보장제도의 원칙과 과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현황과 문제점

①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낮은 불평등 완화 효과

스웨덴, 프랑스 등의 다른 유럽 국가들은 세전과 비교했을 때 세후에 불평등이 60~70% 완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한국의 세후 불평등 완화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에는 물론 여러 조건과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보장 및 복지에의 지출 총량이 중요하다. 한국의 사회보장 지출은 외환위기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OECD 주요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지출 자체가 매우 적다.

 

② 사회보장 급여기준의 비현실성과 광범위한 사각지대

여전히 남아 있는 부양의무제 기준과 사회보장 급여 지급을 위한 재산환산 소득액 기준의 비현실성으로 인해, 지원이 필요함에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크다.

 

③ 역진적 선별성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소득이 높고 고용형태가 안정적인 이들을 더욱 포괄하고, 저소득 및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 간 격차를 오히려 더 넓히는 문제가 있다. 가령, 고용형태에서 비정규직의 규모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대보험 가입률을 살펴보면 정규직의 가입률이 훨씬 높다. 또한, 사대보험에 대부분 가입한 대기업 정규직들의 경우, 기업에서 복지의 차원으로 유급 병가 등을 따로 제공받음으로써, 이들에 대한 보장만이 배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④ 소득보장 중심 복지국가 전통과 빈약한 사회 서비스

한국은 돌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서비스 체계가 매우 빈약하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민간/시장 중심인 한계가 있다.

 

2) 불평등 완화를 위한 사회보장제도 전환의 원칙

① 상대적 최저선을 규범적 적정선으로 바꾸기 (기준 재조정)

② 자유로운 개인의 인간다운 생활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 (현재는 가족 중심 제도, 가족제도로 포괄되지 않는 개인에 대한 잔여적 보장이 이루어지고 있음)

③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적극적 보편주의 (사각지대 문제 해결, 필요한 누구나 보장)

 

3) 사회보장제도 전환의 과제

위의 원칙을 수행하기 위한 세 가지 제도적 기제/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① 모든 개인에게 중위소득 40~50% 수준의 적정 생활 소득 보장

중위소득의 50~100%에서는 일정한 소득을 받도록 하고, 전혀 소득이 없는 사람도 중위소득 40~50% 정도의 돈이 지급되도록 하여 생활 (소득) 보장

 

② 전국민 소득보험으로 보편적 사회보험 실현

가령 자영업과 같이, 고용의 형태나 관계에 무관하게 소득이 있는 모든 주민을 가입자로 하는 사회보험 설립. 이를 통해 해고, 폐업, 휴직 등 여러 사유로 소득이 감소 및 중단된 이들의 소득 보장

 

③ 이용자 중심의 지역사회통합돌봄

현재의 공급자 중심의 분절적 사회서비스에서, 소득보장을 넘어 인간다운 생활 보장을 위해 이용자/필요 중심의 지역사회 기반 공공 사회서비스 제공으로 전환

2. 사회건강보호와 상병수당 (문다슬 시민건강연구소 노동건강연구센터장)

 

1) 상병수당이란?

상병수당(sickness benefits)은 아파서 일하지 못해 수입이 중단될 때, 아픈 기간 동안 적절한 소득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현금성 급여를 의미한다. 상병수당의 필요성을 이해하려면 소득과 건강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소득은 건강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며, 불건강한 상태는 취업 및 고용 유지의 가능성을 악화시킨다. 이처럼 빈곤과 불건강은 상호 강화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데, 상병수당은 이러한 악순환의 경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

 

 

2) 국외 및 한국의 상병수당 제도 현황

전 세계 184개국 중 법정 유급병가를 운영하는 곳은 61개국, 상병급여를 운영하는 곳은 112개국(한국 포함), 관련해 아무런 보장제도가 없는 곳은 11개국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처럼 아플 때의 소득상실을 보장해주고 있다. 상병수당제도가 운영되는 방식은 다양한데, 이를 운영하는 112개국의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95%가 사회보험의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고, 대부분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도 포함해 보장하고 있다. 상병수당 지급을 위한 자격 최소 기간의 경우, 최소 기간 규정을 두지 않는 곳이 가장 많았고, 이를 요구하더라도 대체로 짧았다. 소득대체율은 대부분의 국가가 ILO 협약에 따라 60-69%를 대체해주고 있었지만, 그 이상을 보장해주고 있는 국가가 더 많았다. 상병수당 급여 기간은 6개월이 가장 많았지만, 1-3년, 심지어는 기한 없이 제공해주는 등 더 길게 지급하는 국가도 많았다.

 

한국의 경우, 현재 서울, 울산, 고양, 대전 등 4개 지자체에서 유급병가 지원제도를 실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지자체 생활임금을 기준으로 하고, 이 생활임금을 100% 지급하기 때문에 소득대체율이 높은 편이다. 중앙 차원에서는 현재 상병수당 시범사업 1단계가 진행 중이고, 2025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시범사업은 대상자 기준이나 급여, 대기기간 및 보장기간 등에서 보장성이 매우 낮은 수준이며, 전문가 중심으로 논의되고 대중적으로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아 신청 자체가 매우 적은 상황이다.

 

3) 사회건강보호와 상병수당

상병수당의 제도적 위치에 관한 초기 논의 과정에서는 제도의 목표가 ‘보편적 건강보장’으로 제시되었다. WHO에 따르면, 보편적 건강보장이란 “필요한 누구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서 건강을 유지 또는 개선할 수 있는 양질의 필수 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으로, 이는 건강 돌봄의 필요와 여기에 발생하는 직접적인 비용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아플 때는 노동력이 감소 또는 상실되고, 이로 인해 노동소득과 재산을 상실하게 되므로, 치료 및 돌봄에 필요한 직접 비용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보장이 충분하지가 않다. 이러한 이유로 ‘보편적 사회보호’라는 더 포괄적인 개념이 제시되었다. 보편적 사회보호는 “필요한 누구나 사회보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소득을 보장하는 것(ILO & WB)”을 뜻한다. 이는 소득보장, 그리고 재정적 어려움이 없는 건강 서비스 접근을 동시에 핵심 목표로 갖는 더 확대된 개념이다.

 

ILO에서는 이를 통합적으로 보장하는 ‘사회건강보호’라는 정책틀을 제시하였다. 사회건강보호의 구체 전략에는 위에서 언급한 보편적 건강보장, 보편적 사회보호, 그리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고려가 포함된다. 이처럼, 누구나, 일의 형태에 상관없이(유급노동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아프든- 생계 걱정 없이 충분히 쉬면서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보다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로 제도를 마련하여야 상병수당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세한 강의내용 및 질의응답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