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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미래의 명절
    건강세상 소식지/건강세상11호(2022.02) 2022. 2. 20. 23:32

    새해를 맞아 저녁을 함께 하던 친구가 최근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가 무인 주문시스템 앞에서 홀로 서있던 노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친구는 노인을 도와 햄버거를 주문했지만 곧이어 자신이 노인이 됐을 때를 상상해보니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그 친구만 미래가 두려울까.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서민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고 이들의 미래는 더 불안해졌다.

    프랑스 파리경제대학의 세계불평등연구소가 발표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및 부(富)의 불평등은 더욱 악화됐다. 지난 1990년대 이후 상위 10%의 소득은 10% 포인트 증가했지만 하위 50%의 소득은 5% 포인트 줄었다. 금액으로 따져보면 상위 10%와 하위 50%의 차이는 52배 이상이어서 우리와 소득 수준이 비슷한 국가들의 격차보다 훨씬 더 컸다. 

    소득 격차의 확대보다 서민들을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이다. 지난 2년 동안 시민들은 아파도 제때 치료받지 못했고 때론 죽음을 맞이했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의 ‘코로나19 시기 초과 사망 분석’에서 4차 대유행 기간인 지난해 7~8월 사이에 초과사망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의료자원이 집중되면서 감염환자가 아닌 중환자나 응급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의 부족한 공공보건의료체계 속에서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될수록 취약계층은 아파도 치료받을 수가 없다. 장애가 있는 노인들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집안에 고립돼 있으며 HIV감염인이나 말기암 환자들은 코로나19 환자에게 공공병원의 병상을 내주고 나가야 했다. 한부모 가정은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일을 그만두거나 우울감에 빠져 있다.

    신종 감염병과 같은 사회적 위험이 일상화되는 시대, 개인이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서 올해는 명절에 많은 가족들이 모여서 덕담을 나누기보다는 외롭게 보낼 것 같다.

    새해를 환영하는 명절의 미래는 지금처럼 암울하기만 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개인을 성장하도록 돕거나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안의현 방문간호사(맨 왼쪽)과 함께 어르신을 방문한 이순례 건강반장.(사진제공=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강원도 원주에서는 건강한 65세 이상의 노인들 중에 이웃의 건강을 돌보겠다고 자청한 사람들을 ‘건강 반장’이라고 부른다. 건강 반장들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독거 노인들의 가정을 방문해 혈압을 재는 등 건강 체크를 한다. 발이 붓거나 밥을 못 먹는 장애인이 확인되면 건강반장들은 장애인주치의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고 왕진을 요청한다. 노인들이 나서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 성북구의 느린학습자시민회는 경계선 지능(지능지수 71~84)에 있는 학생들이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시민단체다. 경계선 지능의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느린학습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다가 여러 곳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사단법인이 만들어졌다. 사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시민들이 나서서 희망을 만들어낸 사례다.

    전남 광주의 광주국제교류센터는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정과 이주민이 정착해 사회 구성원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돕는 시민단체다. 이 센터가 매달 영문으로 펴내는 광주뉴스는 다문화 시민들이 직접 기자로도 활동하며 지역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고 이주민들이 취업이나 자녀 교육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생활 정보와 자원을 연계시킨다. 선배 이주민이 후배 이주민들을 돕는 구조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불안한 노인이나 사회의 무관심으로 소외된 취약계층에게 명절은 고통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지금은 외롭더라도 어디선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돌봐줬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미래의 명절은 지금처럼 고독하거나 두렵지 않을 수 있다. 

    젊은 노인 그룹을 만들어 정서적으로 불안한 독거 노인들을 방문했던 한 활동가는 필자에게 “지금은 내가 안부를 묻지만 미래의 어느 날에는 누군가 나에게도 안부를 물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래의 희망은 서로가 기댈 수 있다고 믿어질 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미래에서의 명절은 가족 모임이 아니라 가족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 더 많을 것 같다. 미래의 가족은 서로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친밀하고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지 않을까? 그런 미래의 명절을 기대해본다

     

                                                                                             - 허현희 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출처 : 건치신문(http://www.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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