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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건강세상 소식지/건강세상11호(2022.02) 2022. 2. 9. 11:44

     

    상상과 현실,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는 상상력은 언제나 우리 현실을 압도 한다고 말하기 힘들어졌다. 오히려 현실이 상상의 세계를 훨씬 능가 한다는 사실에 저항없이 동의할 것이다. 상상에 그치기를 바라는 세계가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은 상상에 다시 동력을 부여하며, 우리는 비로소 인간일 수 있는 인간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통찰하게 된다.

     

    정유정의 소설 287년의 밤, 종의 기원과 더불어 소위 말하는 ()3부작으로꼽힌다. 간호사 출신인 작가의 작품들은 등장인물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로 독자를 압도하지만, 잔인한 묘사는 진입장벽으로 작동하여 독자들에게 은밀한 결단을 요구하기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유정의 28은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봉쇄된 화양이란 도시에서 28일간 살아남기 위해 벌어지는 처절한 투쟁의 기록으로 블록버스터급 재난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재난상황에서의 휴머니즘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이 난도질 당하며, 28일 동안 일어난 참혹한 일들이 스토리 라인으로 펼쳐진다.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5, ‘구조대원 한기준’, ‘수의사 서재형’, ‘기자 한윤주’, ‘공익요원 박동해’, ‘간호사 노수진’, 그리고 늑대혈통의 개 링고를 전지적 시점으로 교차 편집되며 스토리를 축조해간다. 이 축조물 안에서 인간과 동물이, 이 두 존재의 감정들이 날것 그대로 인정사정없이 드러난다. 초반에 인물이 많아 인물관계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작가의 생동감있는 필력은 한치도 쉬지 않고 글을 따라 읽게 만든다. 유쾌한 흐름, 편안한 독서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코로나 19와 같은 감염병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소설의 배경은 낯설지 않지만, 전염병 하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극한의 현실 속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인간의 사악하고 이기적인 본성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되묻게 한다.

     

    개로부터 기인한 어떤 전염병이 인간에게까지 전파되고, 병에 전염되면 눈이 빨갛게 되다 고열과 통증을 수반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가족과 같았던 개는 버려지고 무차별하게 살상돼버리는 대상이 된다. 인간이 함부로 동물의 생존권을 말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윤리적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다수의 안전을 위한 유일한 조치는 화양이란 도시 봉쇄! 이 병의 발생 원인도, 치료방법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고 바이러스가 최초 발견된 지 28일이 지나 인구의 절반이 죽은 후에야 정부는 역학조사팀과 의료지원팀, 전염병 대책반을 파견한다. 이 속에서 작가는 생명을 목적이 아닌 대상으로 인식하는 인간이 얼마나 비열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가차 없이 펼쳐 나간다. 또한 인간이 처한 환경과 주어진 조건, 상황에 따라 극한까지도 다다를 수 있다는 직면하기 힘든 불편한 진실도 마주하게 한다. 나는, 당신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 말할 수 있는가?

     

    책 속의 대사와 글들이 내 머리와 심장을 맴돌며 묻고 답하게 한다. “기어코 살아나가서 살아남느라 바빠 해보지 못한 것 들을 하고 싶었다(p.449).” 여기 지금 살아있는 나는, 살아남으려 그렇게 처절해보지 못한 나는, 해보지 못한 것들을 적어 내려가고만 있는 것일까?

     

    우리는 살아있다.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를 살게 하라 (p.446)” 다시 되뇌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있다.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를 살게 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조건에 대한 처절한 통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장보현(건강세상네트워크 회원. 건세 건강인문학산책 책읽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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