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칼럼] 좋은 돌봄 사회를 위한 제언
    건강세상 소식지/건강세상 19호 (2023.10) 2023. 10. 24. 18:56

     

     

    누구나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돌봄을 받고 주는 경험을 한다. 인간의 취약성 때문에 생애주기 동안 어떠한 형태로든 돌봄을 받지 않고 존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노인 돌봄은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민생의 주된 관심사이자 정치적 의제이다. 6월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중장년 절반 이상은 돌봄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이 있으며, 20%가족 돌봄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다고 답해 돌봄 문제가 심각한 것을 드러냈다. 47%고독사는 내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며, 대다수(83.9%)가 국가 돌봄 정책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3차 장기요양 기본계획을 살펴보면, 시민이 필요로 하는 돌봄을 파악하고, 국가가 어떻게 돌봄을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없으며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도 부족해 보인다. 비급여 확대, 요양시설 임대 허용 등을 담고 있어 돌봄을 개인책임으로 돌리고 민영화를 부추기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사회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공공돌봄을 지원했던 사회서비스원 예산은 삭감되었고, 서울시의 경우에도 12개 자치구에서 운영 중인 종합재가센터를 권역별 4개로 통폐합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돌봄노동의 가치에 대한 정부의 낮은 인식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농어촌 등 취약지역에서 5년 근무하면 영주권을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간병인력 허용 비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열악한 돌봄노동의 조건을 개선하는 근본적인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돌봄노동자를 외국에서 유입하는 방식은 떼우기식 처방일 뿐이다. 그보다는 사회 전반적으로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고하고 국가는 돌봄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경제 성장이라는 일관된 목표 아래 생산성 향상과 관련된 논의만 사회·정치적으로 팽배했기 때문에 돌봄노동에 대한 논의는 주요 정치 의제로 다뤄지지 못했다.

     

    국내 장기요양인력의 고령화와 수도권 등 대도시 집중 현상은 계속 사회 문제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2023)에 따르면 요양보호사의 평균 나이는 61.4세이며 고령화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1)에 따르면 간병인 중 외국인의 비율은 46%였으며, 이중 중국동포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의 고령화도 심화되고 있다. 돌봄노동자를 필수인력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그에 맞는 사회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 대표적인 기피일자리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돌봄서비스는 대부분 민간기관에 위탁되고 있어 돌봄서비스의 질 저하와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돌봄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건강권을 보호하려는 정책적 노력은 매우 부족하다.

     

    ‘2022년 장기요양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월평균 임금은 109.9만원이었다. 이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327.4만원)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요양보호사의 시간제 계약직 비율(59.9%)은 과반수를 훌쩍 상회했으며, 정규직은 27.5% 밖에 되지 않았다. 상당수 재가요양기관이 인력 수요가 있을 때만 시간제로 사람을 고용하기 때문에 장기근속은 어려운 현실이다. 더욱이 돌봄노동자 다수가 여성인데 무시와 차별,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과 성폭력 등의 고강도의 감정노동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돌봄노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미국의 정치학자 트론토는 민주적 돌봄이 좋은 돌봄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사회에서만 함께 돌봄(caring with)”이 가능한데 민주적 삶이 있는 돌봄이 결과적으로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든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돌봄에 참여할 때 유익하다는 것이고, 연대를 통해 민주적 돌봄 실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민주적 돌봄은 돌봄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수직적 위계관계를 끊어내어 결국 돌봄의 질이 훨씬 좋아진다는 주장이다. 결국 돌봄은 누구 한 사람, 한 집단, 또는 한 영역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모두 함께 돌보는 책임을 나누고 역할을 분배하는 과정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민주적 실천이다.

     

    마지막으로 돌봄은 복지정책 또는 보건의료정책으로만 한정될 수 없다. 지역 균형, 지방 자치, 마을 만들기, 이민 정책, 환경 보존 등 다양한 사회 정책과 만나야 한다. 특히 주민조직화를 통한 다양한 지역기반단체와 주민들의 참여를 통한 돌봄공동체 형성이 중요하다. 필자가 최근 만났던 서울시 A구 마을건강위원장의 고독사가 생기는 마을을 어떻게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나라는 말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지역의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하는 돌봄공동체의 성장과 지원을 위한 국가 돌봄 정책의 포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허현희(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