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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자유주의적 망상과 상호의존적 돌봄윤리
    건강세상 소식지/건강세상 8호(2022.04) 2022. 4. 18. 15:07

     자유주의는 신분제를 철폐하고, 자본주의적 시장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던 급진적인 사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회 질서와 사람들의 사고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더 이상 급진적으로 세상의 주류질서에 맞서기보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사유재산과 시장에서 요구하는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무가치하도록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사회를 자유롭고 평등하며 비의존적이고 생산적인 개인들의 결사체로 상정한다. 이 가정은 태생적으로 상호의존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적 특징을 왜곡해 왔다. 인간은 태생부터 돌봄이 필수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돌봄이 제공된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도록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의존적이고 생산적인 개인만이 능력을 갖춘 바람직한 사람으로 권유되고 평가되어왔다. 그 결과 돌봄의 제공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당연시되었고, 시대를 거듭하며 희생이란 이름다운 이면에서 돌봄 제공자는 착취되었다.

     

    트론토(Tronto)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제공되는 돌봄을 간과한 사회에서, 돌봄 제공자는 사회·경제적인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지만,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특혜와 이득을 보았고, 이를 두고 무책임의 특권(privilege irresponsibility)’이라 했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추앙은 주로 비의존적으로 시장에서 거대한 경제적 성과를 이룬 사람들처럼 소개되곤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실존을 위해 누군가의 돌봄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비의존성은 허상에 불과하다. 자유주의에서 논하는 비의존성은 상호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특징을 왜곡하고, 돌봄노동 전반을 무가치하게 추락시켰다. 그러나 무책임의 특권은 만연해졌고, 돌봄 공백과 저출생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모성애는 인류가 모성을 근거로 태아기부터 청년기에 이르는 자녀 돌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여성에게 부여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능해왔다. 또한 근대 이후 분명해진 공·사의 구분으로 공적영역의 유급노동은 주로 남성이, 사적영역의 무급노동은 주로 여성이 담당하도록 구조화되며, 가정 내 무급노동을 여성이 전담하는 성역할이 고착화되었다. 여성들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딸의 이름으로, 할머니의 이름으로 출·퇴근 없는 24시간, 연중무휴의 전방위적인 돌봄노동을 지금까지도 전담해 오고 있다. 20세기 복지국가는 공적영역인 유급노동자 중심으로 소득보장체계를 발전시켜왔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몰성적(gender blind)이라고 비판받았다.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며 복지국가는 소득보장 중심에서 돌봄 중심의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

     

     새정부의 장관 내정자들이 과거 저출생의 원인을 여성의 탓으로 돌렸다고 한다. 이준석 당대표는 장애가 있는 시민들의 이동권 투쟁을 두고, 불법 운운하며 소위 장애인 VS 일반시민의 구도로 갈라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가 무책임의 특권을 보장할 것이지, 이에 맞설 것인지에 갈림길에 있다. 그 위에서 시민들은 서로를 돌보는 책임이 젠더구분 없이 모두에게, 그리고 사회적 양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켜보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적 망상을 깨고, 상호의존적 인간의 특징을 사회제도로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제갈현숙_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 한신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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