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연구] 인권의 원칙에서 바라본 의료공백
* 본 칼럼은 코로나19 의료공백인권실태조사단(이하, 조사단)이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추진했던 의료공백 피해사례조사에 대한 결과보고서를 요약 및 정리한 것이다. 의료공백에 대한 조사단의 문제의식은 첫째, 코로나19와 같은 공중보건위기 상황은 의료공백 상황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이런 의료공백은 사회구성원들이 적절한 때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고 있고, 이것은 사회구성원들의 생명과 건강에 중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건강권 침해행위라는 것이다. 둘째, 두 번의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 왜 의료공백 문제는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이러한 피해는 왜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더욱 가혹하고 심각하게 발생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사단은 의료공백 피해사례를 수집 및 기록하였으며, 의료공백 상황을 만들어 낸 구조적 요인들에 대해 파악과 분석을 하였다.
인권의 원칙에서 바라본 의료공백
1. 의료공백 피해와 원인
지난 10여 개월 동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가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 개인으로 하여금 존엄한 삶을 유지하고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이토록 비극적일 수 있다는 것이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다양한 사례로 목격된다. 코로나19 의료공백인권실태조사단에서는 지난 5월부터 10월 까지 의료공백 피해사례를 수집 및 분석하였다. 보고서에서 의료공백의 원인으로 가장 주요하게 지적되는 것이 공공의료자원 부족, 정보 및 의료전달체계의 부재 그리고 차별, 낙인, 배제로 인한 진료거부의 문제였다.
1) 공공의료자원의 부족: 의료접근성의 관점에서
이번 의료공백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13분을 인터뷰한 결과에 비춰보자면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공공의료자원의 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과 둘째, 이 낮은 총량의 공공의료에 사회적 취약계층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공공병원 부족 문제는 코로나19가 대구지역으로 확산되었을 때 많은 환자들이 입원 대기하다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중요한 지점은 민간의료자원은 충분히 있었지만 공공의료자원 즉, 공공병상이 없어서 초과사망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의료공백피해는 공공병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쪽방 주민, 노숙인, 이주민, HIV감염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거의 공공병원을 이용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유사시나 응급할 때 갈수 있는 병원이 없다는 것이다.지금과 같은 감염병 대확산으로 인해 공공병원이 문을 닫는 상황이 이들에게는 생존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2) 객관적이고 신뢰 있는 정보의 부재: 정보 및 의료전달체계
의료공백 피해당사자들이 인터뷰에서 쏟아낸 문제점 중에 하나는 일관되고 신뢰할 수 있는, 필요한 정보의 제공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공공병원이 문을 닫으면 어느 병원을 가야하는지’, ‘어디 선별진료서를 가야하며 몇 시까지 하는지’, ‘응급상황에서 진료 가능한 병원은 어디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가 없어서 제공되지 못한 것과 마련된 정보들은 있었지만 취합되어 가이드라인이나 지침 등의 형태로 제공되지 못한 것, 그리고 정보도 있고 취합된 자료도 있었지만 정보전달체계가 부실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339-보건소-의료기관-119간의 충분한 정보가 공유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의료공백을 예상하고 그에 필요한 필수 정보를 마련하고 관리하고 통제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이 공백으로 남아있고 사회구성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 방치되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공백에 대한 고정유엽씨 유가족은 “아픈 사람 가족이나 아픈 사람이 직접 알아서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결국 의료공백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개인에게 전가되었다는 의미이며,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떤 구조적 책임이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되고 있는 셈이다.

3) 차별, 낙인, 배제 그리고 진료거부: 평등의 관점에서
공공병원은 취약계층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가는 병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현실적으로도 경제적인 여건이 안되는 취약계층들은 민간병원을 이용하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에 의료비 부담이 훨씬 적은 공공병원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 속에서 쪽방 주민이나 노숙인,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주로 공공병원을 이용하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병원이라는 사회적인 이미지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공공병원보다는 민간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서울대병원과 같은 국립대병원도 명백히 공공병원에 포함되지만, 공공적 역할 수행보다는 병원 경영에 있어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는 암센터 건립이나 고가의 검진프로그램, 건물증축 및 시설 등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국립대병원들 조차 의료의 공공성 추구보다는 민간병원의 생리구조를 따라가려고 하기때문에 이미 일상에서 민간병원에서의 차별과 멸시, 배제를 경험한 취약계층들은 국립대병원을 공공병원이리 인식하지 못하고 민간병원에서처럼 차별과 진료거부를 당할 수 있는 곳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공병원 내에서도 계층화된 의료서비스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공병원은 이미 사회적 계층을 구분 짓는 상징적인 단어로 굳어져 가고 있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는 공포와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공포와 두려움은 감염병 자체가 아닌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증폭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인권의 원칙에 근거한 방역대책이 아니라 사람을 감염병의 매개체로 취급하는 정부의 방역대책과 언론의 감염병과 관련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언어들의 사용은 사회적으로 감염병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러한 현상은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더욱 심각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의료기관에서는 감염환자와 감염의 징후를 보이는 ‘의심’환자들에 대해 부적절한 대응이 나타났다. 응급한 상황에서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이유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열이 난다는 이유로 환자에 대한 치료를 거부했다. 이러한 차별과 낙인, 배제는 코로나19와 같은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 병원을 계속 이용해야 하는 만성 또는 특수질환자들과 쪽방 주민, 노숙인, 이주노동자와 같은 취약계층들에게는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의 기전으로 작용한다. 이들이 지금의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는 일상에서의 진료거부를 통해 경험되고 학습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경험적 학습을 통해 이들은 ‘진료거부’라는 자체가 상당히 불쾌하고 모멸감 주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모멸감과 자괴감 때문에 다른 병원(엄밀히 말하면 민간병원)을 방문할 수 없고 이러한 감정들이 무기력으로 다가오면서 아파도 병원 진료를 유보하거나(공공병원이 다시 열때까지) 또는 포기하면서 고통을 감내하는 상황인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의료공백상황은 이들 사회적 취약계층, 약자들로 하여금 건강한 삶을 유보하게 만들고 존엄한 생존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2. 결론
감염병의 위기는 반복된다고 한다. 코로나와의 공존을 이야기 하고 있는 지금, 감염병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대응은 달라져야 한다. ‘완치’, ‘의심’, ‘차단’, ‘격리’를 넘어서 존엄한 삶과 존엄한 생존을 보장하는 대응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 동안 ‘K-방역 성공’ 신화에 가려져 있던 의료공백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반성적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문제의 구조적 요인들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정책적, 법률적, 실행적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설계에는 인권의 평등의 원칙이 반드시 적용되고 실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