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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외롭게 떠나간 그들을 기억하며 - 2020 홈리스추모제
    건강세상 소식지/건강세상4호(2020.12) 2020. 12. 21. 13:53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매해 동짓날을 기해 홈리스추모제를 열고 있습니다. 매해 동짓날을 기점을 홈리스추모제를 여는 이유는, 한 해 가운데 가장 밤이 길고 추운 날인 동짓날보다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이어가고 또 마무리하는 홈리스 대중의 처지와 닮아있는 날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동짓날은 다시금 밤이 짧아지는 기준점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동짓날의 이런 측면이야말로, 홈리스추모제의 의의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01년에 시작되어 어느덧 스무 번째를 맞이한 홈리스추모제는, 추모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가난으로 인해 거리나 시설, 쪽방, 고시원 등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홈리스 당사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동시에 홈리스추모제는 인권의 영점상태에 다름 아닌 홈리스상태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고발하여 홈리스 대중의 권리와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요구와 결의를 모으는 장()이기도 합니다. 부적절한 거처에서 맞게 되는 때 이른 죽음의 기저에는, 근본적으로 반()인권적인 홈리스상태를 장기간 유지토록 만드는 열악한 복지정책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홈리스추모제가 진행됐던 지난 20년 동안 변화가 아주 없진 않았습니다. 2011<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러저러한 홈리스 지원책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홈리스상태로 내몰린 이들의 삶의 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자활시설입소만을 내세우는 정부와 지자체의 한계적인 지원책으로 사태를 해결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변하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현실은 홈리스상태를 상태를 살아가는 이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떠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을 맞이한 2020년에도 철옹성 같은 부실한 홈리스 복지지원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외려 퇴행만을 거듭했을 뿐입니다. 지난 6월 서울시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노숙인 공공일자리의 근로조건을 악화하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당사자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마지못해 이를 철회하였고, 최근에는 방역강화를 명분으로 서울역 무료급식장의 조식 제공을 중단함과 동시에 이용 대상을 축소하였습니다. 반면, ‘노숙인 등을 위한 주거지원과 의료지원은 한 치의 개선도 없이 코로나19’ 이전에 수립된 계획 그대로 집행되었을 따름입니다. 중앙정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홈리스는 지정된 병원만 이용하도록 한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는 거의 모든 지정병원들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전환된 현재까지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 대응을 위한 제도?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재난지원금 제도를 설계할 때 홈리스 당사자의 현실을 고려하라고 요구했지만, 행정안전부는 이를 묵살하였고 그 결과 절반에 가까운 거리홈리스가 지원금을 수령하지 못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코로나 상황에서 노숙인을 언급한 건, ‘코로나19 희망일자리의 일부 유형에서 노숙인 등을 제외하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 아동청소년 유형 일자리사업에 노숙인 등이 포함되는 것을 문제 삼자 기민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올해 홈리스추모제를 통해 우리는 코로나상황에서 삶을 멈춘 홈리스 당사자들을 추모하고, 홈리스 당사자들의 삶을 멈추게 만든 부정한 시스템을 고발하려 합니다. 많은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리며, 작년 추모제 때 울려퍼진 홈리스 당사자의 목소리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우리의 추모는 홈리스의 죽음을 수용하고 다시 세상을 살자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홈리스로 살게 하는 조건에 눈 감는 세상, 홈리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 자립과 자활만을 강요하는 세상, 부실하고 부족한 복지만을 내세우는 세상이야말로 홈리스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원인임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추모는 멈출 수 있는 죽음을 멈추게 하지 않는 세상에 반대하고,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안형진 • 홈리스행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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